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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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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21 02:34 조회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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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안희경 |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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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20 22:22:00 수정 : 2019.03.20 22:41:49 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안희경의 ‘세계 지성과의 대화’ - 지역·관계에서 찾은 지속 가능한 경제

영국 토트네스의 유기농 농산물 업체 ‘리버퍼드 유기농 농부들’(ROF)은 구성원 모두가 노동자이자 주인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지속 가능한 생태환경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탐욕을 강요하고 소수의 이윤을 위한 경제체제”를 바꾸고 있다. 사진은 ROF의 주요 구성원들.  ROF 제공
영국 토트네스의 유기농 농산물 업체 ‘리버퍼드 유기농 농부들’(ROF)은 구성원 모두가 노동자이자 주인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지속 가능한 생태환경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탐욕을 강요하고 소수의 이윤을 위한 경제체제”를 바꾸고 있다. 사진은 ROF의 주요 구성원들. ROF 제공

토요일 아침, 고양이들은 잠들고 연분홍 매화는 잔설을 털고 있다. 영국 남서부의 작은 도시 토트네스에 해가 떠오르자 담벼락 이끼 사이사이로 물방울이 맺혔다. 시청 앞 너른 마당은 수런거렸다. 갓 구워온 빵 냄새가 피어오르고, 흙 묻은 채소들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말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듯 살랑인다. 금요일과 토요일 아침에 들어서는 파머스 마켓이다.

손재주를 뽐낸 공예품들까지 행인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나는 간신히 호기심을 누르고 도심 공공텃밭을 돌아 언덕을 올랐다.

‘전환마을 토트네스(Transition Town Totnes·TTT)’ 산하 리코노미센터(Reconomy Center)에서 열리는 ‘지역 기업가 워크숍’을 탐방하기 위해서다. TTT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토트네스 주민들이 2006년에 만든 조직이다. TTT의 모토는 ‘밝게 생각하며 함께 행동해 세상을 바꾼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 중심으로 작동하는 대부분 기업들의 셈법과는 다르다. 그들은 오로지 이윤을 위해 지구 환경을 훼손시키고, 농민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다.

TTT 리코노미센터장 제이 탐트
“우리에게 더 많은 기업은 불필요
필요한 건 함께 사는 삶 위한 기업”

창조의 자유, 그 위대함의 실현
TTT는 2011년 ‘지역 기업가 워크숍’을 처음 열었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자립, 이를 위한 지역의 자립을 도모하고자 집단적 아이디어 축제를 벌인 것이다. 새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 이미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이루고자 하는 가치를 전하자 여기저기서 그 뜻을 받아들인 제안들이 터져나왔다.

“1000파운드를 빌려주겠어요” “지역에 인센티브를 내겠다니, 100파운드 기부할게요” “그 설비가 제게 있습니다. 가져다 쓰세요” “당신이 찾는 보리를 산 너머 사는 제 친구가 농사짓습니다. 소개할게요” “케이크를 구워 갈게요” “힘내라고 안아주고 싶어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지원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도 자랐다. ‘만약에 뭔가를 하려 한다면, 나도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안전망이 생긴 것이다.

워크숍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지역 최초의 맥주회사인 ‘뉴라이언 맥주’, 지역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매주 채소 꾸러미도 받을 수 있는 스쿨팜 CSA(www.schoolfarmcsa.org.uk), 지역 카페에서 거둬들인 커피 찌꺼기를 팩에 넣어 개인이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을 재배할 수 있도록 판매하는 그로 사이클(Grow Cycle, grocycle.com), 기업·주택의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해법을 제공하는 정보기술(IT) 회사인 아간드 솔루션(Argand Solution) 등의 기업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토트네스 재생에너지연합(TRESOC), 토지신탁을 통해 안정적인 주거를 공급하는 전환 주택공동체(Transition Homes) 등 30여개의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나아가 리코노미센터는 의회와의 협상을 통해 3층 건물을 무상 임대받아 상시적인 지역 기업 컨설팅을 하는 인큐베이터로 자리 잡았다.


■‘영웅적 기업’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 지역에서 자본주의 극복할 해법을 캐다

세계 곳곳의 시민들은 각종 병폐를 낳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 맞서 대안적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갖가지 방안들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 주민들이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체제를 위해 만든 조직 ‘전환마을 토트네스’(Transition Town Totnes·TTT)가 마련한 워크숍 장면이다.    ⓒ안희경
세계 곳곳의 시민들은 각종 병폐를 낳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 맞서 대안적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갖가지 방안들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 주민들이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체제를 위해 만든 조직 ‘전환마을 토트네스’(Transition Town Totnes·TTT)가 마련한 워크숍 장면이다. ⓒ안희경

지난달 2일 찾은 ‘지역 기업가 워크숍’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이어졌다. 창업 지원과 사업 컨설팅을 하는 ‘리코노미 MBA’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여성 세 명을 만났다. 인근 대도시 플리머스의 건설회사 직원인 로라, 프랑스 브레통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후 은퇴한 코린, 그리고 개인사업을 하다 지역에서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자 왔다는 제인이다. 코린은 배낭에서 따끈한 크레페를 꺼냈다. 발효된 유기농 메밀로 만든 크레페는 구수하고 쫀득했다. 영국과 바다를 맞닿은 프랑스 브레통 스타일의 크레페를 토트네스에 소개하고자 코린은 ‘오팔라(HOPALA)’라는 푸드트럭을 시작한 지 4개월째 접어들었다. 그는 페이스북 광고와 웹사이트 홍보만으로는 다양한 방문처를 찾기 어려워 이번 워크숍에 참가했다. 로라는 회사에서 새로 기획한 공익사업 담당자로 뽑혔지만,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거리에 붙은 리코노미 안내 포스터를 보고 찾아왔다.

강사는 리코노미센터장인 제이 탐트다.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실리콘밸리에서 IT 기업을 운영하다 뉴욕에서 벌어진 9·11테러를 보고는 삶의 궤도를 바꿨다. 그린 스타트업을 했고, 딸이 태어나면서 이곳 토트네스로 이주했으며, TTT 창립에 함께했다. 그는 영국 왕립예술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탐트는 코린과 로라의 상황을 분석한 뒤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이제 겨우 사업 대상만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으로 정한 로라에게 탐트는 타깃 고객 분석, 지역 조사, 추구할 가치 등을 세분화한 뒤 점검할 지점들을 논의했다. 코린에게는 교육자였고, 브레통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스토리텔링뿐 아니라 지역 조직들과 유기농 메밀 재배자, 해산물을 공급할 어부도 소개했다. 하루 종일 진행된 워크숍이 마무리될 즈음, 로라는 자신의 상태가 아직 시작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래도 고민을 나눌 공간과 든든한 네트워크가 곁에 있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코린은 워크숍 마지막에 진행된 사업가치를 표현하는 한 줄 문장 쓰기에서 ‘당신의 영혼을 위한 크레페’라는 모토를 발표하기도 했다.

리코노미센터가 진정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일까. 지속 가능한 경제,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탐트의 말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기업가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기업이 필요한 겁니다. 국가가 진흥하는 프로그램은 흔히 일자리 프레임에 갇히곤 합니다. 큰 기업을 유치하면서 일자리 300개를 창출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300개 일자리를 무너뜨려요. 테스코나 월마트가 들어오고 문 닫은 지역 상점이 속출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와 연결된 지역 식량사슬도 끊어집니다. 함께 사는 삶이 필요한 겁니다.”

순환경제가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가능하도록 시민들이 만든 ‘물품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셰어셰드’의 거리홍보용 간판.  ⓒ안희경
순환경제가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가능하도록 시민들이 만든 ‘물품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셰어셰드’의 거리홍보용 간판. ⓒ안희경

워크숍을 하는 도중 점심시간에 토트네스의 지역 식량사슬이 갖는 역량을 느낄 수 있었다. TTT의 푸드인커뮤니티(Food in Community)가 주최한 ‘밥값 부담 없는 카페’ 행사가 도심 교회에서 열렸다. 유기농 채식 정찬으로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10여가지 음식이 마련된 뷔페다. 교회 앞에서는 ‘셰어셰드’(ShareShed, www.shareshed.ogr.uk)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회원 모집에 한창이었다. 셰어셰드는 물품 도서관이다. 책을 빌려 읽고 돌려주는 방식처럼 자전거나 사다리, 전동드릴, 제초기, 기타, 믹서 등 갖가지 일상용품을 2~3파운드를 내고 필요한 기간 동안 누구나 빌려 쓸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순환경제가 가능한 것이다. 이 모두를 주민들이 만들어냈다.

TTT에 담긴 ‘전환’의 의미에 대해 TTT 공동 창립자이자 세계적으로 2000여개 전환마을 조직을 대표하는 나리시 지안그란데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알아차리자는 겁니다. 우리의 문명이 멸망의 슬로 모션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요. 브렉시트 역시 그 병증 가운데 하나죠. 바꿔야 한다는 자각이 전환입니다. 그리고 전환은 과정이죠. 영웅적인 기업가보다는 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드는 겁니다.”

유기농 농산물 생산기업 ‘리버퍼드’
구성원 650명이 소유자이자 노동자
“지구를 가꾸는 최선의 길이 농사
노동자 자주회사로 그 가치 실현”

토트네스에서는 시민들이 ‘지역’ 생산물의 가치를 매우 중시한다. 시민들 사이의 대화에서도 옷가게나 식료품점, 잡화점 쇼윈도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농산물의 경우 이들에게 지역 유기농 농산물의 가치를 심어주는 데 한 축을 이룬 기업이 있다. ‘리버퍼드 유기농 농부들(Riverford Organic Farmers, www.riverford.co.uk)’이다. 뉴욕에서 경영상담가로 일하던 가이 왓슨은 소수의 이윤을 위해 재편되어가는 자본주의 질서에 위협을 느끼고, 1987년에 고향 토트네스로 돌아왔다. 부모가 일구던 밭을 터전 삼아 유기농 농산물 꾸러미 배달회사를 시작했다. 직접 키운 채소를 친구 20여명에게 배달한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리버퍼드의 농산물과 고기는 매주 5만여 꾸러미가 영국 전역으로 배달된다. 지역의 농부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수확을 늘려왔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자는 원칙에 따라 영국 전역에 4개의 거점 농장을 설립했다. 영국도 1인 가정이 늘어나면서 왓슨은 IT 부서를 강화했다. 그의 농장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실리콘밸리에 있는 거대 IT 회사에 온 듯한 분위기였다. 엔지니어 40여명이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며 상품을 개발했다. 리버퍼드 농장에 있는 레스토랑의 셰프를 전면에 내세워 매주 수확하는 농작물로 만들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개발해 꾸러미 상품을 내놓고, 도시 직장인을 위해서는 30분 요리 레시피와 재료만으로 된 상품을 만들었다. 플라스틱을 줄이고자 포장재는 수거해 재활용한다. 왓슨은 힘들 때면 들판에 나선다고 했다. 들은 그에게 스승이고, 그 스승의 가르침 속에 자본주의의 한계를 돌파할 해법이 있다고 했다. 텃밭 가꾸기 캠페인을 하며 봄이면 텃밭 농사 워크숍도 연다. 그에게 물었다. “고객이 농사법을 배우고 씨앗을 사가 직접 농사지으면 리버퍼드 생산물을 덜 살 텐데 괜찮냐.” 그는 껄껄 웃더니 들에서 고랑 너머로 대화하는 농부의 목청으로 답했다.

“당장은 매출이 줄겠죠. 그런데요. 더 길게 보면 농부들의 끈끈한 관계 속으로 한 식구가 더 들어오는 것 아닐까요.” ‘리버퍼드 유기농 농부들’의 자산가치는 2015년 기준 607억원에 이른다. 거대 투자사들이 회사를 팔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왓슨은 숙고한 뒤 지난해 6월, 큰 결정을 내렸다. 노동자가 주인인 노동자 자주회사로 전환한 것이다. 왓슨은 리버퍼드가 언젠가 거대 자본에 팔릴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자식을 잃는 것만큼 끔찍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리버퍼드 구성원 650명 가운데 한 사람의 소유자이자 노동자다. “농부는 땅을 보살피고 채소를 길러 사람의 삶을 가꾸는 이들입니다. 저는 우리 농부들을 믿습니다. 지구를 가꾸는 최선의 길이 농사에 있고, 그 길은 훗날 제가 없더라도 농부인 우리 직원이자 소유자들이 지켜 나갈 겁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탐욕을 강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자주회사로 우리의 가치를 이루고자 합니다.”


■노동자들, 협동조합에선 부속품이 아닌 ‘주인’…‘관계’를 보살피는 기업 경영, 이 시대의 대안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지속 가능한 경제 법 센터’(SELC)는 법적 인프라 개선과 노동자협동조합 활성화 등을, 브라질 기업 메르쿠르는 지구 환경·지역 공동체·직원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경영을 통해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사진은 SELC가 지원한 한 에너지협동조합의 사례 발표 장면(왼쪽 사진)과 메르쿠르 직원들 모습.  SELC·메르쿠르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지속 가능한 경제 법 센터’(SELC)는 법적 인프라 개선과 노동자협동조합 활성화 등을, 브라질 기업 메르쿠르는 지구 환경·지역 공동체·직원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경영을 통해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사진은 SELC가 지원한 한 에너지협동조합의 사례 발표 장면(왼쪽 사진)과 메르쿠르 직원들 모습. SELC·메르쿠르 제공

미국에는 오늘의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불평등 구조를 재편하고자 법을 바꾸며 행동하는 그룹이 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 법 센터(Sustainable Economies Law Center, www.theselc.org)’다. 이들은 주로 대기업을 위해 일하는 로비단체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법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아예 법적 인프라를 바꾸려 한다. 이미 이들이 제정해낸 법도 있다. 2012년 캘리포니아 의회를 통과한 가정식품법(California Homemade Food Act)이다. 점포를 임대하지 않고 집에서 식품을 만들어 팔 수 있게 한 법이다. 저소득층이나 이민자 가족들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가정식품법이 시행되자 2013년에만 1000여곳에서 가정음식 판매가 살아났다. 지금은 이 법이 빵이나 쿠키, 그래놀라와 같은 유통기한이 긴 음식만이 아니라 따뜻한 요리까지 포함하도록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특히 이 법 개정에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들도 로비단체를 끌어들이며 신경을 쓴다. 개인들이 만든 요리가 그들의 플랫폼을 통해 판매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경제 법 센터’(SELC)는 플랫폼을 통하더라도 그 플랫폼은 거대 기업이 아니라 지역 공공기관에 속한 플랫폼으로 제한하려 한다. 지역의 자원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수수료와 같은 수익은 어느 한 기업이 아닌 지역 공동체를 위해 순환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SELC는 법적 인프라 바꾸기 활동과 더불어 노동자협동조합,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노동자 자주회사 활성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노동자이자 소유자들에게 경영 노하우를 지원하는 기업훈련소를 운영하고, 매달 세 번씩 법률자문 카페도 연다. 이들이 함께 만든 노동자협동조합 가운데 성공적으로 지역 문화까지 바꾼 기업이 있으니, ‘만델라 잡화점 협동조합(Mandela grocery cooperatives, www.mandelafoods.com)’이다. 이 협동조합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밀집한 서오클랜드에서 출범했다. 이 지역은 80년 가까이 행정적으로 소외된 곳이다. 뉴딜정책이 진행될 때, 미 정부는 사람들이 집을 사서 중산층에 편입되도록 주택대출을 했는데 특정 지역 거주자들에게는 대출 거부 정책을 폈다. 대출이 거부된 지역은 시카고, 오클랜드, 뉴욕 등에 있는 흑인 밀집지역이다. 그 결과 이들은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겼고, 해당 지역에는 식료품점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 돼 버렸다. 그런 곳에 2009년 만델라 잡화점 협동조합이 문을 연 것이다. 현재는 면적도 세 배로 키워냈고, 여느 중산층 지역에 있는 마켓 못지않은 규모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 법 센터’
대기업 아닌 주민들이 결정권 갖도록
법적 인프라 바꾸기 활동을 진행
소외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거주지에
잡화점 협동조합 설립 도와주기도
신자유주의의 갖가지 병폐 넘으려면
노동자가 경영하는 협동조합 늘어야

브라질의 고무제품 업체 ‘메르쿠르’
성장 대신 ‘관계’ 고려하는 경영 선택
지역 요구에 집중하자 새 시장 열려
수입의존율 줄이고 친환경 노력도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 단축 성공
노동자들 사이 평등성 지향하는 게
경영에도 유리하다는 결과 증명

‘가장 취약한 곳에 제일 먼저 지원한다’는 원칙을 가진 SELC는 온라인 플랫폼 협동조합도 시도하고 있다. 지역 서비스 공급자들만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마사지사, 청소부, 개를 산책시켜 주는 사람 등이 소유자이자 서비스 제공자가 돼 플랫폼 수익금의 이익을 분배받는 방식이다. 이미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여러 성과를 내고 있다. 리버퍼드의 구성원들은 소유자이자 노동자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지만,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유기농 산업에서는 똑같은 농사를 짓지만 그들은 소유자나 농부가 아니라 그저 노동강도가 센 농장 노동자일 뿐이다. SELC는 이들 농장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노동자 소유 농장을 만든다. 또 특정 부지를 영구적 유기농 농지로 묶는 법안도 여러 기관들과 함께 추진 중이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의 여러 도시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역경제를 활발하게 일궈놓고 나니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이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이다. 결국 상권을 가꿔온 원주민 자영업자나 노동자들은 높아진 임대료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SELC는 이를 막아낼 방법을 협동조합에서 찾는다. SELC의 경제적 민주주의 분과장이자 전미노동자협동조합연맹 이사회 의장인 변호사 리카르도 누네즈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면 지역경제에 투자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다들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에 투자하죠. 최근에 출범한 ‘이스트베이 영구 부동산협동조합’의 경우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1000달러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돈을 모아 부동산을 사거나 주택협동조합, 토지신탁을 만드는 것이죠. 집세를 못 내게 된 사람들이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해 이 협동조합을 만든 거죠. 주나 시정부 지원도 이끌어냈습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위해 상업용 부동산도 포함하고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 공동체 문화가 파괴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 자본을 지켜야 합니다.”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는 성공한 노동자협동조합 모델이 있다. 1970년대 부흥하듯 일었던 노동자협동조합이 한두 개 남고 스러지자, 1996년 흩어졌던 활동가들이 지역 제빵 노동자들과 뭉쳐 ‘아리스맨디 협동조합협의회’를 세웠다. 이들은 실패의 원인이 노동집약적인 운영에 있었다고 보고, 하나의 성공한 모델을 만들어 이를 복제한다는 전략으로 협의회를 강화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노동자이자 소유주인 회원이 840명에 이르고, 6개의 제과점과 조경회사·건설회사를 이뤘다. 같은 레시피를 공유하며 회계·법률·교육·매장 부지 선정 등은 협회에서 맡는다. 노동자들의 경영능력이나 노동자협동조합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말끔히 씻어낼 성공의 증거들은 이미 세계 곳곳에 있다. 2200명 가정방문 돌봄노동자가 주인인 ‘뉴욕 홈케어 협동조합연합회’, 노동자 8만6000명이 이끄는 스페인의 ‘몬드라곤 노동자협동조합’ 등이 대표적이다.

누네즈는 갖가지 병폐가 드러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SELC 활동, 노동자협동조합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최근 몇년 동안 노동자협동조합이 성장하는 데 있어 여성 이민자들의 역할이 가장 컸습니다. 새로운 협동조합원의 절대다수를 이루죠. 특히 이민자 여성들의 경우 심하게 착취당합니다. 청소노동자의 경우 건강을 위협하는 독한 세제를 회사의 강요로 쓰고 있기도 하고요. 그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왔습니다. 멕시코 출신 여성 노동자들과 일할 때였어요. 트럼프가 당선됐을 즈음인데, 한 여성이 회의 도중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트럼프의 ‘브라운 피플(이민자)들을 쫓아내버려’라는 말이 너무 두렵다고요. 그러면서 자기가 유일하게 희망을 느끼는 공간이 협동조합이래요.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무엇인가 발언권을 갖는 유일한 곳이라고요. 바깥에서는 늘 하나의 소모품으로 취급당하는 게 현실이죠.”

산업재해 비보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노동자가 소모품에 불과한 현실이기에 멕시코 출신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는 더욱 깊게 다가왔다. 과연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은 그저 부속품의 하나로 취급받아야 할까. 브라질 산타크루스두술에 있는 고무제품 생산업체인 ‘메르쿠르(Mercur, www.mercur.com.br)’를 소개한다. 이 업체는 1924년 창업, 한 집안이 4대째 소유하고 있다. 메르쿠르는1995년까지 해마다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하지만 회사가 커질수록 오너를 비롯해 직원 700여명의 일상엔 피로가 쌓여갔다.

변화의 시작은 오너로부터 비롯됐다. 전문경영인체제로 전환하며 기업 문화를 전면적으로 검토하는 결정을 내리고 컨설팅을 받았다. 당시 컨설팅을 맡은 책임자는 지난 호(경향신문 3월7일자 8·9면)에서 소개한 영국의 슈마허대학을 다녀온 경험자였다. 그는 슈마허대학의 이념을 소개하며 이사회와 함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할 길을 모색했다.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메르쿠르를 다시 살핀 것이다. 이 연구는 2007년까지 이어졌다. 메르쿠르는 마침내 그들이 추구할 가치를 다시 세웠고, 2009년까지 모든 직원이 함께 공부하며 공유했다. 메르쿠르가 당시 세운 가치는 바로 ‘관계’다. 메르쿠르의 최고경영자(CEO) 브레노 스트러스만의 설명이다. “우리는 성장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관계를 문제 삼기로 했어요. 지구와의 관계, 다른 이익 당사자와의 관계, 우리 직원들과의 관계, 지역과의 관계…. 우리가 지금까지의 시각을 바꿔 여러 관계들을 고려하자 생산품도 변했습니다. 성장만을 고려할 때는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잘 팔리는 물건을 가져다 디자인만 변형해 팔기도 했죠. 그런데 지역공동체와의 관계, 지역공동체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하자 지역의 요구에 집중하게 됐죠. 파생되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일어났습니다.”

메르쿠르는 회사 내에서도 서로 함께하는 관계 맺기를 시작했다. 회사의 인사 시스템도 수평적으로 바꿨다. 부서가 아닌 프로젝트 중심으로 굴러가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지원자를 받았다. 운전사로 입사하더라도 특정한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운전사가 아닌 그 업무를 수행하는 담당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는 모든 직원들의 투표로 선정된다. 메르쿠르는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수정, 필요한 자재를 지역산으로 대체했다. 자재 조달의 수입의존율이 40%에서 2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또 담배사업, 무기산업과 관련한 비즈니스를 중단했으며, 아동 노동을 이용하는 업체와는 거래를 끊었다. 탄소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고, 물 사용량도 줄였다. ‘성장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메르쿠르의 CEO 스트러스만은 그럼에도 여전히 이윤을 창출해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메르쿠르는 2009년 이후 단 1명의 노동자도 해고하지 않았다. 매출이 급감했던 2014년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해 전 직원이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의결했다. 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되, 임금은 이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임금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근속에 따른 인상분과 그해 임금 인상을 동결함으로써 가능했다. 2016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섰다. 흑자로 돌아서면서 임금을 8%씩 인상했지만 노동시간은 주당 36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남녀 임금 차이도 없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한다. 이들이 노동자들 사이의 평등성을 지향하는 이유는 메르쿠르가 추구하는 가치인 ‘관계’와 관련된 것이자, 실제 심리학자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회사 경영에 더 유리하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메르쿠르는 ‘관계’를 보살피는 경영이야말로 이 시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안희경의 세계 지성과의 대화-보살핌의 경제로’에서 4편까지는 세계적 석학들과의 만남을 통해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경제, 보살핌의 경제를 살펴봤다. 모든 거대한 변화는 물레방아가 홈에 물이 들어차야 돌아가듯 변화를 원하는 집단의 기운이 차오를 때 그 변곡점을 이룬다. 정화작용이 이뤄진 수많은 작은 지류들이 하나로 모여 마침내 오염된 거대한 강물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힐러리 클린턴의 정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세기 동안 무던히 애써온 수많은 개인, 풀뿌리 운동가들의 모색이 있었다. 5편과 이번 6편에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꾸준히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 중인 현장의 생생함을 드러내 알리고자 했다.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대안적 경제로의 전환, 변화를 실천하는 TTT나 SELC 같은 조직들이 일하고 있다. 변화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어왔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내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만든다.

■전환마을과 지속가능경제 활동가들 환경·노동 분야 전문가부터‘관계 중심 경영’ CEO까지
 
나리시 지안그란데(Naresh Giangrande)는 미국 출신으로 21년 전 영국으로 이주해 조경회사 임원, 명상지도 등을 하다 전환마을 운동에 뛰어들었다. 세계 최초의 전환마을인 ‘전환마을 토트네스’(TTT)를 조직하고, 세계 30여개국 2000여개 마을로 확산시켜왔다. 현재도 전환마을 운동 지도자로 세계를 돌며 활동한다.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제이 탐트(Jay Tompt)는 실리콘밸리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을 운영하다 9·11테러 이후 삶의 궤도를 바꿨다. TTT를 조직하고, 시민중심 경제를 위한 리코노미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플리머스대학과 슈마허대학에서 강의하며 영국 왕립예술학회 회원이다.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가이 왓슨(Guy Singh-Watson)은 농부이자 영국의 대표적 유기농 회사인 ‘리버퍼드 유기농 농부들’의 창립자다. 옥스퍼드대에서 농림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경영상담가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리버퍼드 농장을 시작했다. 영향력 있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리버퍼드 유기농 농부들’ 경영팀을 이끌고 있다.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리카르도 사미르 누네즈(Ricardo Samir Nunez)는 ‘지속 가능한 경제 법 센터’(SELC) 경제민주주의 분과장이자 변호사다. 서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여성활동조합 활동을 했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노동자협동조합 조직과 운영 지원에 전념하고 있다. 전미노동자협동조합연맹 이사회 의장이며 캘리포니아 노동자협동조합 지원센터 이사다.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브레노 스트러스만(Breno Renato Strussmann)은 브라질 산타크루스두술에 있는 기업 메르쿠르의 최고경영자(CEO)다. 95년 역사의 메르쿠르는 고무제품을 생산하며 교육교재 등 교육프로그램 개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스트러스만은 20년째 메르쿠르에 근무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한 ‘관계’ 중심의 경영 모델을 구현해오고 있다.

▶안희경은

[세계 지성과의 대화 ⑥]모든 이의 자립 돕는 ‘새로운 기업’ 실험
재미 저널리스트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레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등의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202222005&code=960100#csidx8ce3938ff0bfac3bef7ac3ee8a0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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