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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뉘른베르크(Nuer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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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19-06-0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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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세기를 거치면서 오랜 유럽의 전통을 고수해온 예술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중세의도시,남부독일에 뉘른베르크 고성과. 구시가 한가운데에 견고한 고딕건축으로 우뚝선교회 앞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분수가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몇세기를 거치면서 유럽,동방의 무역중심를 이루었던 부를 누렸던 유명한 장터가 있다. 당시 이곳에서는 세계곳곳에서 온 소금, 곡물,양념, 꿀, 와인등 각가지 진기한것들을 살수있었다. 이곳은 항상 세계 각처에서 온 많은 사람들로 발디딜틈 없이 북적거렸다. 가까운곳에 5Km거리를 연이어 건축된 화려한 주택가에 부유한 상인들이 살았다고한다.
시민들의 생활은 풍요로웠고 . 부와 번영을 최고로 누렸던 이시기를 Richard Wagner의 시대라고한다. 로맨틱한 보석상자라는 뜻이다. 당시 이곳은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중세도시를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다. 높은 언덕위에는 1050년 Heinrich 3세로 시작해서 1571년까지 카이저들이 살았던 웅장한 카이저성(Kaiserburg)이 있다.

부와 권력을 함께 누렸던, 성곽을 감싸고 있는 숲의 전경이 붉은 벽돌과 뾰족한 탑들이 주는 느낌은 낭만의 극치이다. 당시 Barbarossa카이저는 전 유럽의 반이 그의 영지였다고하니 그 권력과 명성은 전 유럽을거의 차지했던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을 연상케한다. 카이저성에서 조금 내려오면 뉘른베르크의 자랑이자 보석인 천재화가 '듀러'(Albrecht Duerer 1471-1528)박물관이있다.
듀러거리, 듀러호텔, 듀러선물집 그곳은 온통듀러거리다. 마치 천재화가 '고흐'가 살았던 남프랑스의 알(Arles)거리처럼 화가의 지난 발자욱으로 가득하다. 듀러가 죽은지 몇세기가 지나서도 그가 남긴 예술품들은 이렇게 살아 끊임없는 방문객들이 그의 발자취를 더듬게하는 예술의 위대함을 발견하게된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기도의손'은 그의 유명한 동인쇄 판화작품이다.구시가지는 하나의 문화재라고 할수있을 정도로 역사, 문화, 예술이 공존하는곳이다. 뉘른베르크는 1050년부터 도시로 인가(Urkunde) 되었다. 곳곳에는 전통독일집 (Fachwerk)과  거친 자갈,  돌이 깔려있는 오르막길에 골목길에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던 아름다운 정감있는도시였다. 히틀러는 이 도시를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당시 그는 이곳에 중요한 공공건축물들을  건축하게 했다. 이곳은 유럽의 중요한 중심도시가 되었다.
 1933년  중요한 독일민족사회주의 국회정당회의(Nationalsozialismus Reichsparteitage)가 이곳에서 열었다. 세계제2차 대전 당시 도시는 거의(90%)파괴되었다. 그후 다시 복구하여. 지금도 이곳은 중세의 향기를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2000년 95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고 당시 많은 시민들로 광장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현재는 모던하고 활동적인, 옛것과 공존한 인구5십만명이 살고있는 대도시가 되었다. 시립박물관에는 당시 풍요로웠던 아름다운 뉘른베르크성을 4사람이 4년을 걸쳐완공한 조형품에서 옛도시와 고성문화를 볼수있었다.

11월초 우리들 부부가 방문한 뉘른베르크는 마치 당시 중세기로 돌아간듯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시장은 유럽에서 대단히 유명하다. 중세도시, 고성, 이곳출신인 천재 듀러화가등 볼거리가 많은 뉘른베르크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크리스마스 4주전(Advent)부터 열리는 크리스마스시장은 세계곳곳에서 몰려올 정도로 북적거린다. 우리들 부부는 11월의 서늘한 추운 날씨로 조그만 오두막집 같은 소박한 그릴소세지집에서 맥주와 배추절임(Sauerkraut)를 맛있게 먹었던 1박2일, 중세도시의 잊을 수 없는 낭만적인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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